

[ 지은이 ]
1. 버블 : 부의 대전환
존D. 터너 와 윌리엄 퀸 - 경제학자
2.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작가
[ 들어가며 ]
< 검은 목요일 >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가 열렸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오전에 주식가격이 일제히 내렸지만 한 달 전부터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모든 종목의 주식가격이 떨어졌고 하락 폭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검은 목요일' 이후 열 달 동안 뉴욕의 주가는 폭락을 하면서 8분의 1 수준까지 내려갔고 주가 폭락의 여파로 인해 세계 모든 도시와 산업이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렇게 길고 파멸적인 세계적 불황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합니다 단 한 번 있던 일이어서 첫 글자를 대문자로 씁니다
[ 내용 ]
< 비극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는 예기치 못한 충격과 같았습니다 이 전쟁 이후 여러 제국이 해체되었고 최초의 공산주의 독재가 나타났으며 전 세계 계층 및 성별 관계의 변화가 촉발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금융시작의 민주화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전쟁의 여파로 장장 10년간 잠들어 있던 중산층의 풍부한 돈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나가면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기술 개발이라는 불꽃이 일면서 풍부한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려갔습니다 미국은 1917년 4월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빨리 군대를 조직하고 정부에 필요한 자금을 빨리 조달해야한다고 믿었습니다 1916년 19억 달러이던 전쟁자금 지출은 1917년 127억 달러로 증가했고
1918년에는 185억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우드로 윌슨 행정부는 미국 국민들에게 막대한 양의 국채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화려한 마케팅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채권의 명칭부터 '자유 채권'으로 붙여 미국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했습니다 얼마 전 설립된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자유 채권'을 담보로 받기 시작했고 금융기관들이 채권을 보유할 경우 좋은 이점들을 제공했습니다 투자자들은 각자 거주하는 지역의 금융기관에서 채권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금융기관은 채권 유통망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기관들이 투자자들에게 신용으로도 채권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첫 번째 자유 채권에 이어서 4개의 채권이 추가로 발행되었습니다 청약자들이 엄청나게 모였습니다 자기 예금에서 돈을 빼서 생애 최초로 증권에 투자해보는 미국인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미국 총인구가 1억 명이 약간 넘던 당시 4번의 청약을 거치면서 이미 2300만 명의청약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이 청약자 집단에는 전례 없는 수의 노동자 계층과 중산층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20년대의 기록적인 미국 경제성장률은 미국 예금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돈을 더욱 많이 창출해 주었습니다 초반에는 상당 부분이 회사채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은행의 대출 한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던 때에 대기업들은 이러한 회사채 수요를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채권 발행량보다 시장으로 들어오는 자본의 양이 많았고 이런 현상은 회사채의 가격을 상승하게 만들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줄어들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대안 중 하나는 바로 주택투자였습니다 전쟁 중에는 주택산업도 군수품을 위해 조정되느라 새 집이 거의 지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로 신규 주택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졌습니다 미국 전역의 주택 가격은 40퍼센트가량 올랐습니다 시세차익을 취하기 위해 땅 투기 거래량이 엄청나게 증가했으며 사기꾼들도 많았습니다 또 다른 대안 투자처는 외채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경제 재건과 전쟁 배상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미국 투자자들에게 고금리로 채권을 팔았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은행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채권은 15분 만에 다 팔렸고 발행될 때마다 청약자는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외채 발행률이
1927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채권만 취급하던 최대 투자은행 내셔널시티가 주식을 발행하기 시작하였고 마케팅이 갑작스럽게 주식시장으로 집중되었습니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 연평균 4.7퍼센트씩 GDP가 올랐고 경제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기술 혁신, 전기 생산과 상품의 대량 생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연구개발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혁신기업의 주식은 특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1928년 2월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가격이 너무 인상되면 투기꾼들이 몰려들 수 있기에 주식시장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에 대한 조치로 금리를 높였으나 해외에서 자국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미국 시장을 매력적으로 여겨 외채가 들어왔습니다
대출은 금리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기업들은 일제히 더욱 많은 주식을 발행했습니다
주식의 수와 가격이 같이 증가했습니다 1929년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거래량은 27.8퍼센트 올랐습니다 언론들은 주가 상승세가 과하다는 입장과 이제 새로운 금융시대가 열리려는 신호라는 입장으로 양분되었습니다
<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락 >
다우지수가 1927년 초부터 231퍼센트 증가해서 381.2에 도달했을 때였던 9월 3일부터 지수는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의 하락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0월 3일 큰 폭으로 급락하고 불안정한 상태는 10월 22일 화요일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0월 23일 수요일 갑자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자동차주가 급격히 대량 매각되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장 막판에 이르렀을 때는 광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증권가에서 빌린 돈으로 투자했던 거래들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바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식 대량 매각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할 것이라고 예견한 뉴욕 경찰 당국은
금융지구 전체에 마차와 사람들을 배치하고 월스트리트로 들어가는 입구 한 곳을 폐쇄했습니다 목요일 아침이 되자 예상대로 수많은 거래자들이 가격을 따지지 않고 팔기위해 몰렸습니다 가격하락 소식이 뉴스로 퍼졌습니다 오후 1시 반 거물급 은행가들은 회합을 가졌습니다 J.P. 모건이 주도한 금융 카르텔의 개입으로 손실의 대부분이 빠르게 회복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 주가 되면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리더들이 붕괴를 막아주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장이 열렸을 때 매수자보다 매도자가 확연히 더 많았습니다 검은 목요일에는 주식 팔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월요일에 매도자가 몰렸고 주가는 뚝뚝 떨어졌습니다 오후가 되자 미국 연방준비은행도 민간 은행도 개입할 생각이 없음이 분명해지면서 주가는 더욱 떨어졌습니다 언론에서는 위기가 발생할수록 주식을 사야한다고 조언했지만 가격은 계속 하락하기만 했습니다 이틀 동안 딱히 이유도 알 수 없이 23.6퍼센트나 하락했습니다 이 수치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있을 때도 다우지수 하락률이 겨우 6.3퍼센트였던것과 비교해 볼때 믿을 수 없는 수치였습니다 주식시장은 1930년을 기점으로 약화되기만 했고 경기는 깊은 침체기로 빠져들었습니다
[ 나가며 ]
1.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주기적으로 불황은 있어왔고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2. 사람들의 욕망과 탐욕은 멈춘적이 없었고 그 끝엔 대공황과 같은 경제의 붕괴가 있었습니다
3. 몇 년 있으면 대공황이 일어난지 백년이 되는 해가 돌아옵니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이유는 그 역사와 유사한 일들이 틀림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봄으로써 통찰력을 키워야 합니다
[ 책 내용을 담은 동영상 ]
https://youtu.be/nIHxRpEOsFE?si=IokZkDrystS2Im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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